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앞에 서다
-김구 선생의 어린시절
서울역에서 천천히 걸어서 남산공원에 올라오면 넓은 광장이 펼쳐지는데 여기가 백범광장입니다.
초등 저학년생들도 알고 있는 우리의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구 선생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힘세고 덩치도 컸던 김구선생은 10대에 동학에 입도해서 애기접주로 활동할 만큼 마음먹은 일은 확실하게 해 내는 성격이었습니다.
동학 활동으로 알게 된 안진사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 안진사는 바로 안중근 의사의 아버님이십니다. 이 인연이 깊어져 나중에 안중근 의사와 사돈지간이 되시는데요, 김구 선생의 장남인 김인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딸인 안미생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죽인 낭인으로 착각하여 일본인 쓰치다를 맨손으로 처단하기도 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창호 선생을 찾아가 문지기가 되겠다고 합니다. 안창호 선생은 김구를 보고 문지기가 아니라 경무국장으로 활동하게 하십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의 활동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의 노선도 제각기 다르고 주도권을 가지고 의견대립도 생기는 등 임시정부 내에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끝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켜냅니다.
-김구 선생의 건국활동
해방 후에는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십니다만 곧 찬탁이냐 반탁이냐를 가지고 온 나라가 갈등이 깊어지고, 분단의 위기가 현실화된다는 불안감에 김규식과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 남북협상까지 벌였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해 결국은 분단된 상태로 남북한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오로지 하나의 나라로 온전히 독립하기를 바랐던 김구선생에게 남한 단독 선거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이렇게 반대하는 김구 선생은 결국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보면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쓰셨습니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의 BTS가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고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K한류라 불리는 K뷰티, K드라마, K 영화, K-pop 등 모든 문화부문에서 K를 붙이면 세계에서 사랑을 받게 되는 요즘, 새삼 김구 선생님의 소원이 절반은 이루어진 듯합니다. 이제 반쪽 남은 통일의 소원도 조만간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름다운 고여사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것도, 김구 선생의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작으나마 일조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가? 동상 뒤쪽 조각한 사람들의 이름에 친일작가 김경승이 떡하니 새겨져 있습니다. 김경승이 만든 남산의 안중근 동상과 국회의사당 내 이순신 동상도 철거되었는데, 남산의 백범 동상에 김경승 이름이 아직도 있었던 것입니다. 2019년 시민단체들이 국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대동아 건설의 소리'라는 작품을 출품하는 등의 친일행위를 한 김경승의 작품은 전북 정읍에 전봉준 동상, 부산 용두산 공원에 이순신 동상, 인천 자유공원에 맥아더 장군상 등이 있습니다. 친일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기에 역사 바로세우기에 우리모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안중근 기념관의 건물은 기둥이 왜 12개 일까?
-동양의 평화를 꿈꾸다
안중근의사는 무슨 일을 하신 분인가요? 예, 잘 아시다시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분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동양평화를 주장하면서 동양을 모두 일본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가진 자이기에,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안중근 의사는 꼭 해야 할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안중근 의사는 애국계몽운동으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쳐주려고 했으나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일본과 또 정미7조약을 맺자 의병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병활동도 여의치 않자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면서 3년 안에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죽이지 못하면 자결하자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잘라서 결의합니다. 거기서 나온 피로 대한독립 글자를 쓰고 태극기를 만듭니다.
안중근 기념관 건물을 잘 보시면 여러개의 기둥들이 이어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12명의 단지동맹을 맺은 분들의 상징하는 1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의거 후, 안중근 의사의 공판을 지켜본 외국 기자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는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실로 두려워했던 것은 행여라도 무죄 석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교자가 되어야 국민들이 모두 마음의 울분을 터뜨리며 함께 나라를 구하려 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공판은 안중근 의사의 승리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이후에 열린 재판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200여점의 유묵을 쓰셨습니다. 옥중 유묵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가져갔는데,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수일 텐데도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얻으려고 줄을 섰다고 할 정도로 안중근 의사의 신념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안중근 의사의 평화를 향한 굳건한 의지와 위대한 정신세계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4명의 안중근
많은 분들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안중근 의사 혼자 결행한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만 4명의 의사가 함께 계획한 거사입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하얼빈역의 이전 역인 채가구 역에서 이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를 뚫지 못하고 총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실패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얼빈역에서는 안중근과 유동하 두 분이 대기하고 있었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향해 정확하게 저격에 성공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고 기리는 것과 함께 다른 세 분들의 이름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덕순은 이후 밀정 행적이 드러나 보훈처에서 심사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중근 기념관
남산에 위치하고 있는 안중근 기념관은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이 먼저 있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2010년 안중근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여 국민 성금으로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남산에는 안중근 의사, 김구선생, 이시영 선생의 동상들이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을 잘 지켜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일본의 만행으로 짓밟혔던 남산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뜻과 의지가 심어져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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