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미정에서 나와 10여분 남짓 고려 천도 공원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북한이 보이고, 삼중 철조망이 이어지는 곳으로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이 여실히 느껴지는 곳입니다. 차량 유입이 적어 한적해서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연인들에게 강추되는 곳이지만, 철조망의 두께에 마음이 무거워져 즐거운 데이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철조망 너머 북한까지는 겨우 1.8km입니다.

곧게 뻗은 길을 달리다보면 고려 천도 공원이 보입니다. 이곳 고려 천도 공원은 강화군이 민통선 안보관광코스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11월에 개장한 역사테마공원입니다. 강화도 북쪽 송해면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공원으로 상시 개방되고 주차료나 입장료는 없습니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천도문으로 들어섭니다. 고려 만월대의 출입문을 형상화한 천도문입니다.

옛 지명 승천포였던 이곳은 조선시대까지 개경에서 강화를 잇는 포구로, 황해도나 평안도에서 서울로 가는 배들은 모두 이곳 승천포를 거쳐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나루터였습니다.
고려 고종은 최 씨 무신정권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합니다. 당시 고려 왕권은 바닥이었던 무신정권 시대였고, 무신들은 몽고에 맞서기보다 강화도로 숨어들어가 권세를 이어가려 했습니다. 육지의 백성들은 수십년간 도륙당하는데 말이지요. 강화도는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공격이 쉽지 않은 반면, 수도인 개경과 가깝고 조운 등이 편리한 곳이었죠.
암튼 천도하는 고종의 어가가 처음 강화도에 닿은 곳이 여기 승천포입니다. 어가가 닿은 날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천도를 감행한 군주의 마음이 날씨와 같았을 것입니다.
천도문으로 입장하면 바닥에 원형 모양을 한 넓은 광장이 나오는데, 고종의 어가 행렬 장면을 담아놓았습니다.


공원 입구부터 안내문들이 고려 천도 역사를 말해줍니다.

강도시기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고려청자, 팔만대장경 등 찬란한 문화가 탄생한 시기였습니다. 이곳 강화도에서 상정고금예문(금속활자)과 팔만대장경(16년간 만듬)이 만들어졌고, 최우의 원찰(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명복을 빌기위해 특별히 건립한 사찰)이었던 선원사는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사찰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상정고금예문은 강화천도시 예관이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해 최충헌 소장본만 남게된 것을 주자(鑄字)로 28부 찍어 간직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난리 중에 활자를 주조해 책을 찍어냈다는 것은 이미 기술이 발전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경판들은 선원사를 거쳐 태조7년(1398) 합천 해인사로 옮겨진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팔각정과 인공폭포가 있는 수변 휴게공간도 있습니다. 인공폭포에는 물을 역류하는 연어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건너편 북한 개풍군을 볼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웅장한 기상을 담고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형상화한 국난극복 - 팔만대장경 조형물. 국난극복의 역사를 담은 높이 7m의 커다란 조형물로 밤이 되면 조명이 켜져서 웅장한 모습이 됩니다.
그 뒤로 삼별초의 항쟁을 담은 전시 패널을 설치해 조국 수호의 살아있는 역사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서 시작된 삼별초는 몽골과의 화친 이후에도 계속 대몽항쟁을 보입니다.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몽골항쟁이 계속되다가 제주도까지 갔으나, 결국내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의 항쟁은 끝이납니다. 삼별초의 항쟁은 배중손을 중심으로 3년간 대몽 항전을 벌입니다.



공원 가장 안쪽으로 고려 고종 사적비가 있습니다. 고종이 1232년 강화로 천도해 고려궁을 지은 후 39년간 몽골에 대항해 싸운 것을 기념하는 비입니다. 그 시기 동안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등의 문화유산을 남겼던 것입니다. 39년간 고려를 지탱했던 왕궁은 몽골군의 화친 후 개경(개성)으로 환도하면서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남한에는 고려의 흔적이 거의 없으나, 강화 천도로 고려왕릉 4기가 남아 있습니다. 23대 고종의 홍릉, 22대 강종비 원덕태후의 곤릉, 21대 희종의 석릉, 24대 원종비 김약선의 딸 순경태후의 가릉.
고종(1213~1259)은 고려 23대 국왕으로 22대 강종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재위 기간동안 최씨 일가의 무단정치가 이어집니다.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 4대 60년에 걸쳐 최씨 무신정권이 이어졌습니다. 고종은 재위기간동안 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화에 능이 있습니다.
몽고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의 대장경판이 소실되고 경주 황룡사 9층탑이 불탑니다.


유럽까지 정복했던 몽골이 강화도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화도는 천연 요새였습니다. 몽골이 강화를 공격하려면 갯벌을 통과해야하고, 빠른 물살의 염하(천연 해자 역할)를 건너야 하며, 성벽을 뚫어야 합니다.
게다가 고려는 장기전에 대비해 강화도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입니다. 육지에서 피란온 주민들을 동원해 방조제를 만들고, 방조제 안 갯벌은 농지로 만들었습니다. 삼남지방에서 거둔 조세는 조운을 이용해 거둬들일 수 있었습니다.
몽골의 주요 목표가 남송이었던 점도 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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