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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

조선 중종과 철종 역사가 담겨있는 서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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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서삼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관람 안내:

관람요금은 어른(만 25세~64세) 1,000원, 지역주민은 50% 할인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무료입장입니다.  

태실 관람을 원하는 분들은 인터넷 예약자에 한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관입니다.

 

서삼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 윤 씨의 희릉,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 씨의 효릉(쌍릉),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 씨의 예릉(쌍릉) 이렇게 '세 기의 능'이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서삼릉이라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외에도 소현세자의 소경원, 의소세손의 의령원, 문효세자의 효창원, 10대 연산군 생모 폐비 윤 씨의 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현세자의 소경원과 인종의 능인 효릉, 폐비 윤 씨의 묘소인 회묘가 있으나 농협 산하의 젖소개량소 부지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비공개로 관람이 제한됩니다.

본래 서삼릉은 광릉수목원에 필적할만했으나 박정희 정권 시절 서삼릉의 능역을 한양컨트리클럽,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농협대학교, 농협 젖소개량소, 종마장, 한국스카우트 종합훈련원에 넘겨주었기에 무참히 훼손되었습니다.  

 

최근 서삼릉의 태실 권역을 방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생겼으나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합니다.   태실은 아이가 태어날 때 달고 나오는 태를 보관하는 장소로 이런 태실이 고양 서삼릉에 54기가 모여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후덕을 지방까지 미치게 한다는 생각으로 왕자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명당을 찾아 안치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을 전후해 일제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고양의 서삼릉에 무성의하게 모아놓아 왕족의 존엄과 품격을 비하하고 훼손시키고 백성들에게 조선의 멸망을 확인시켜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순창원은 관리를 맡은 '참'이 기거하며 제사에 관련된 물품이나 행정절차를 맡아하던 곳입니다. 

 

능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앞쪽에 정자각이 있습니다.  오른쪽에 비각이 있고, 능침은 정자각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왕의 묘를 감히 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희릉: 11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 씨는 1515년 인종을 낳고 7일만에 2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이에 태종의 헌릉 서쪽에 능을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1537년 김안로의 주장으로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게 되었습니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중종의 능을 희릉 서쪽 언덕에 조성하면서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취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하였으나, 문정왕후 윤 씨에 의해 1562년 중종의 능을 현 서울 강남구인 정릉으로 천장하면서 장경왕후 능은 다시 희릉이 되었습니다.

 

효릉: 인종과 인성왕후 박 씨가 나란히 묻힌 쌍릉으로 인종의 능에만 병풍석이 둘러져 있습니다.  현재 이 능은 비공개 능력인데, 이유는 주변이 축협 부지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11월까지 비공개 능역이었던 온릉이 개방되면서 조선왕릉 중 유일한 비공개 능역입니다.  

 

예릉: 조선 25대 임금인 철종과 철인왕후 김 씨가 나란히 묻힌 쌍능입니다.   원래는 중종의 정릉이 자리했던 곳이나 문정왕후에 의해 이장되면서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서삼릉의 원

소경원은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귀국한 후 두 달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고양 효릉 근처인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고 1870년에 소경원으로 격상하였습니다.

서삼릉의 효창원(좌)과 의령원(우)

의령원은 21대 영조의 세손이자 장조의 맏아들인 의소세손의 원으로 조선 세손의 묘소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으나 1949년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원침에 있는 석물과 표석만 옮겨왔다고 합니다.   표석의 전면과 후면의 글씨는 영조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의소세손은 장조와 현경왕후 홍씨의 아들로 세손으로 책봉되었으나 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효창원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의 원으로 현 효창공원 자리의 효창원을 일제강점기 때 이장하면서 석물과 신도비, 표석만 옮겨와서 다른 것들은 볼 수 없습니다.  최근 드라마 "옷소매 붉은끝동"이 생각나는데요, 문효세자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786년 홍역이 발병하여 창덕궁 별당에서 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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